"평가"의 영역 그리고 "단죄"의 영역

박근혜씨에게 보내는 편지

SüdKoreas Präsidentin Park Geun Hye : Die Erbin des Diktators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 : 독재자의 후계자)

2012년 해외의 많은 언론들이 당신을 “독재자의 딸”이라 표현하며 한국의 대선을 보도한 가운데, 독일의 한 시사지 슈피겔 (Der Spiegel) 지는 조금 다른 표현을 씁니다. 당신이 그저 “독재자의 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사실, 당신 말고도 이 세상에 “독재자의 딸” 들은 많았습니다.
흔히 당신과 비교되는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어 보셨을 겁니다.

당신의 아버지처럼 그녀의 아버지도 독재자였고, 그의 집권 기간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가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일은 당신의 아버지가 한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그 죄값은 나의 것이다”
스베틀라나가 한 이 말은 아버지가 한 일을 부정하며 대통령 후보로 나온 당신과 비교되며 한 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일생을 살펴 보면 그녀가 대단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어서 저런 말을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해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속한 세상은 당신이 속한 세상처럼 호락 호락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못했고, 세상의 비난에서 자유롭지도 못했으니까요.
사람의 목숨을 함부러 앗아 가는 일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걸 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저렇게, 독재자였던 아버지의 후광이 자식에게는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되지요.

좀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혹시 정일우 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는 지요?
존 빈센트 데일리 라는 이름을 가졌던 한 미국인 신부의 또 다른 이름 입니다.
1960년대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에 왔던 그는 사제 서품 후 몇 년간 서강대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이 유신에 반대하다 중앙 정보부에 끌려간 후 한국 사회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지요.
당신의 아버지가 추진하던 3선 개헌에 반대하다가 추방당할 뻔 하기도 했던 그는 이 후 정부의 개발 논리에 떠밀려 한순간에 살던 집을 잃어 버린 철거민들의 곁에 머무릅니다.
“ 처음에 한 달간 판자촌 (현장)체험 하러 갔죠. 그런데 그 한 달이 18년이 되어 버렸어요”
한 달이 18년이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때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너무 인간다운 면이 많았어요….거기서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람인 지를 깨달았어요… 가난한 사람, 철거민, 판자촌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 높은 자리 있는 사람, 교육 받은 사람,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이 나라를 올바르게 잡아야지. 그런데 안 하기 때문에, 절대로 안 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희망은 가난뱅이뿐이예요…”
그는 18년 동안 철거민들과 같이 생활하며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그리고 이 후 괴산으로 내려가 농민 운동, 생몀운동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재밌는 일은, 철거민의 곁이건, 농민의 곁이건 그가 머무르는 곳에는 늘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 합니다.
“공동체 형성의 핵심은 잘 들어 주는 것이예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줍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 줍니다…상대방을 존경하는 것이지요. 유일무이한 존재로 대하는 것이예요. 존경하니까 온 몸,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그가 생전에 남긴 다른 말 한 마디…
“내 생의 목적은 죽기 전까지 사람 되고 싶다는 것이예요…”
“예수의 삶을 살다 가셨다” 라는 평가를 듣는 그의 삶이야 말로 제 눈에는 “반인반신” 으로 보여 집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힘으로 제압하고, 억누르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에 기꺼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아는 "반인반신"의 모습 입니다.

정치인에 관한 평가는 늘 공과 과, 두 가지 면에서 이뤄지기 마련 입니다.
잘 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잘 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은 잘 하지 못했으나 교육 정책은 좋았다… 뭐 이런 것 말입니다.
당신의 아버지에 관한 평가도 마찬가지 여야 겠지요.
그런데 당신의 아버지가 집권했던, 18년 동안의 일을 생각하면, 저는 이런 식의 평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모여 토론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해서 온 몸, 온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는 자신의 뜻에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인혁당 사건과 같은 사법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것이지요.
“독재자” 라는 말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밀어 부친 사람이라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 말에는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고한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 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얼핏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이 평범한 일은, 그것을 실천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한 사람은 생명을 짓밟는 일을,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되지요. 당신 아버지의 18년과 고 정일우 신부의 18년은 그렇게 달랐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건물을 짓고, 고속도로를 만들고, 돈을 벌어 들이는 일과 같은 저울에 놓여질 수 있는가?
자신의 뜻에 반대한다고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정책의 방향이 올바르지 못했다”거나 “정책은 좋았는데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와 같은 평가와 동등하게 다뤄질 수 있는일인가?….
감히 말씀 드리지만, 저는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평가의 영역이 아니라 단죄의 영역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누군가에게는 가업이고, 누군가에겐 정치적 기반을 닦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정말 힘 없는, 떠밀려간 사람들한테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목숨 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편법을 동원해 내치고, 죽음으로 내몬 당신의 방식은, 슈피겔 지의 불길한 예언처럼, 당신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정상적 이지 못했던 시간들 뒤에 평가의 영역과 단죄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 우리들이 있었다는 사실…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찬조 연설에 나섰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의 저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 입니다.

“20년 형이든 30년 형이든 개의치 않는다”
문장을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20년이든 30년이든 달게 받겠다고 당신이 말씀하시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나쁜 사람” 이라는 간단한 말로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생존권을 위협하고, 당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당신 자신과 당신의 20년 지기에게 유리한 일을 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4년 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신은 당신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도 내팽겨 치고 살았습니다. 세월호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당신은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올리고, 평소처럼 밥을 먹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리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거나 지키지 못한 일은 “평가”의 영역이 아니라 “단죄”의 영역 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죄를 지은 사람은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건 대한민국 초딩도 알 만한 기본적인 사실 이지요. 이 기본을 배워 나가는 당신의 학습 속도가 매우 더딘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만, 그래도 당신이 배움의 길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대통령 직에서 내려오고, 구치소에서 생활하며 재판을 받는 일련의 일들이 당신에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 덕목을 배우는 첫 걸음이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 그리고 참,
당신이 국제법무팀까지 동원해 제기한 “구치소 내에서의 인권 침해”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일반 제소자보다 더 큰 방에 머무르고 있고, 다른 제소자들 보다 더 많은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 수용자 6.7명이 함께 쓰는 방을 구치소 측이 개조해 만들었다는 그 방엔 당신이 좋아하는 TV도 있고, 접이식 메트리스에 관물대, 수세식 화장실 등이 구비되어 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 제소자들은 성인 남성이 팔을 펴거나 발을 뻗기 힘든 매우 좁은 방에 수감 되어 있다는 사실도 당신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만, 당신의 재임 기간 동안 생계형 범죄로 수감된 사람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었지요. 먹을 것이 없어 돈을 훔치고, 아이에게 줄 분유 값을 위해 돈을 훔친 사람들…
당신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보통의 사람들이 구치소 내에서 겪는 인권 침해에 대해 이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태어나 처음 해 보는 “타인을 위한 행위”가 될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이 점은 고마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구치소 안에서는 방 안의 스위치에 일일이 쪽지를 붙여 주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스위치가 전등을 끄는 것인지 정도는 이제 당신이 스스로 알아 보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바닥 청소나 설거지도 거기선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임을 이제는 아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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