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 마음이 자라다

트리어, 또 하나의 고향

칼스루에(Karlsruhe)에서 어학을 마친 뒤, 남편의 학교가 트리어(Trier)로 정해지자 우리는 이사할 집을 둘러 보느라 틈 나는 대로 트리어에 들렀다.

칼스루에는 도시 나이가 2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름 신생 도시인데 반해 트리어는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도시 전체가 그림책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건물들로 가득했다.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도시를 걸어 다니며 집을 구하고, 이사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 한 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이 도시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그 내공 만큼이나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래 전 로마가 도시를 지었다는 이 곳엔 아직 로마의 유적이 거리 곳곳에 남아있고,독일 땅에 로마가 지었던 도시의 흔적을 보기 위해 찾아 오는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관광 도시와는 다르게 외국인보다는 지역 토박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거리를 걸을때면 아름다운 풍경 곳곳에 박힌 투명한 장벽이 느껴졌다.풍경 너머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머리속은 복잡해 지기 마련이다.
이제 막 익숙해 지기 시작한 칼스루에에서의 생활을 접고 이 곳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구 구겨진 체 머리속을 떠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머물렀던 도시 칼스루에에서는 ’시작하는 사람의 행운' 같은 게 따랐던 것 같다.
핸드폰도 없고,독어도 할 줄 몰랐던 내가 사전을 들고 헤맬때 마다 영어로 이야기 하며 도와 주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산책하다 마주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이야기를 나누고...그러다 친구가 되었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 가고,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큰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렇게 2년 동안 정든 이웃들과 친구들을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트리어에 도착했는데, 아...동네 분위기가 냉랭했다.
먼저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고,웬일로 누가 말을 걸어 온다 싶을 때도 ’왜 이 곳에 왔냐'는 날 선 질문만 있을 뿐이었다.
한 달, 두 달,...그러다 1년... 마흔의 나이가 부끄럽게 밤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과연 내가 이 곳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랜 시간, 불안과 외로움 말고는 내 옆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참으로 예쁜 이 도시의 모든 집들은 내게, 손을 뻗어도 만져질 것 같지 않은, 그저 하나의 풍경이었다.

진이 다 빠져 다시 칼스루에로, 아니면 아주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지흔이 유치원 친구 파울 엄마 미카엘라가 우리를 초대했다.
뮌헨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왔다는 그는 좋은 아우라를 가진 친구였다.
다른 엄마들이 나와는 인사 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려 했던 데 비해, 미카엘라는 나와 인사도 하고, 종종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별 다른 이야기 없이 눈빛 만으로도 이 친구가 선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대번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오후에 애들 데리고 놀이터에 같이 가지 않겠냐”며 물어 보면 늘 선약이 있다는 대답만 되풀이 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사슴 같이 큰 눈동자에 주저하고 고민하는 그의 마음이 여과 없이 비쳐 졌다.
동양인을 본 것도 처음이고,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처음이라는 그에게 그 정도의 망설임과 고민은 어쩜 당연한 것인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감히 그를 이해 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미카엘라가 우리를 먼저 초대한 것이다.

우리 집 모퉁이만 돌면 갈 수 있는 한 뼘 거리의 그 집을 나는,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찾아 갔다.

그 날 지흔이와 파울은 어른들이 걷어낸 국경선을 가볍게 뛰어 넘어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나와 미카엘라는 같이 차를 마시며 그 동안 서로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서로의 고향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던 것 같다.

그 뒤 두 아이는 자주 만났다.
파울이 우리 집에 와 놀 때도 있었고, 지흔이가 그 집에 가 놀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저녁마다 두 아이는 창가에서 서로에게 잘 자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파울네 노란집은 더 이상 우리에게 ’풍경'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 와 처음에 무척 힘들었다는 내 얘기를 듣던 비비아네의 아빠 스테판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여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말야, 이 분이 마인츠라는 도시에 사시다가 남편 직장 때문에 트리어로 이사를 와 살게 되신 거였거든. 근데 ...처음에 여기 와서 많이 우셨다는 거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분위기도 싸~하니까  ’내가 이런 도시에 살게 되다니’하고 많이 우셨던 모양이야.
그런데 몇 년 지나 다시 마인츠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많이 우셨다는 거야. 이제 이 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이야. 재밌지 않아?”
이 도시에서 얼마를 더 머무르게 될 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곳을 떠나게 된다면 나도 스테판의 선생님처럼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울고, 이 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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